교통사고로 인생이 180도 뒤바뀐 여성이 있습니다. 사고 4일 만에 인지 감각이 급격히 떨어졌고, 3년여 만에 조기 치매 판정을 받았습니다. 50살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사고 이후 외부 충격으로 뇌의 신경로가 손상됐다는 전문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받을 줄 알았던 보험금을 보험사는 주지 않았습니다. 장해는 사고가 아니라 과거 병력 때문이란 이유를 들었습니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은 50살 김 모 씨입니다. 김 씨는 6년 전 시내버스를 타고 경남의 한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 차로에 있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왔고, 버스 기사가 충돌을 피하려고 핸들을 급하게 꺾으면서 옹벽을 들이받았습니다.
이 충격으로 버스에 타고 있던 김 씨는 버스에서 3~4차례 굴렀는데, 머리를 직접 부딪치진 않아 외상은 없었습니다.
사고 직후 병원에서 뇌 CT 검사를 받았는데 2009년 발병한 뇌출혈 흔적 말고는 새로운 병변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고 4일째부터 김 씨의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오른쪽 손가락과 팔에서 마비 증상이 발생했고, 한 달 뒤부터 언어와 기억력 등 인지 기능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2014년부터는 가족이나 외부의 도움 없이 일상 생활이 힘들어졌고, 급기야 2016년 11월 사회연령 2세에 해당할 정도로 인지능력이 떨어졌고 조기 치매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 씨 남편
"기억력도 흐려지고 인지기능 자체가 자꾸 나빠지더라고요. 수박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오이 달라고 그러고. 일상생활 자체는 안되고 계속 가족들이 돌봐야 하는 거죠."3차례 일반 MRI 검사에서는 별다른 뇌 손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단순 뇌진탕이란 진단만 나왔습니다.
하지만 특수 MRI 일종인 뇌확산텐서 영상 검사 결과는 달랐습니다. 직·간접적인 충격으로 뇌 신경로가 손상됐다는 진단이 나온 겁니다.
2009년 사고 전 / 2013년 사고 후 사고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보면 뇌의 신경로 중 하나인 '전전두미상로'가 단절된 흔적이 포착됩니다. 전두미상로는 무감각증에 관여하는 신경로인데, 이곳을 다치면 의욕이 많이 떨어지고, 타인과의 감정 교감 능력을 잃게 됩니다. 실제 김 씨의 증상과 유사했습니다.
영남대병원 장성호 교수는 사고 당시 뇌를 다칠 정황이 있었는지, 사고 이후 증상, 뇌 확산텐서영상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외상성 축색(뇌 신경로) 손상 진단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장성호 영남대 교수
1차적 손상은 사고의 직접적인 충격으로 뇌 신경이 다친 경우, 2차적 손상은 사고 충격으로 뇌 신경을 흔들어 놓는 걸 말하거든요. 2차적 손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흔들린 신경들이 서서히 손상이 진행됩니다. 김 씨처럼 사고 당시 경하게 다친 경우 2차적 손상으로 시간 경과에 따라서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뇌확산텐서 영상 검사는 물 분자의 운동을 이용해 뇌의 신경들을 3차원적 정밀 분석할 수 있는 검사법입니다. 1990년대에 개발돼 만 5천여 개 논문이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고, 미국 법원과 FDA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밀한 촬영이 가능해 일반 MRI에서는 단순 뇌진탕으로 진단됐던 미세한 뇌신경로 손상을 잡아낼 수 있습니다. 다만 국내에선 아직 연구가 미흡해 임상에선 보조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 사고에 대해 사고 버스의 보험사인 DB손해보험은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교통사고와 장해는 인과 관계가 없고, 김 씨의 과거 뇌출혈 병력이 장해에 기여한 부분이 크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DB손해보험
"MRI 상의 신경 손상이 없고 외견상으로 뭐 사지 마비라든가 외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소송 금액은 상당히 고액이거든요. 전례도 없었고 근거도 마련해야 되고요. 그래서 소송을 들어간 거죠." 김 씨 측은 2009년 뇌출혈 병력은 있었지만, 거의 완치됐고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김 씨 남편
기왕증이라고 이야기를 못 박아두는 거죠. 옛날에 뇌출혈 있었으니까 그것이 원인이지. 교통사고는 관계없다. 관계가 있어도 10%다. 전부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거죠. 솔직히 좀 황당하죠. 이건 뭐 도저히 여기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구나. 결국, 김 씨 측이 택할 수 있는 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2015년 9월 소송이 시작됐습니다. 1심 재판부는 2년여 만에 보험금 4억 7천만 원 중에서 2억 원을 보험사가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김 씨가 사고로 인해 외상성 축색 손상 등의 상해를 입었으니 손해 배상 책임이 발생한다고 봤지만, 김 씨가 다른 승객보다 중한 상해를 입은 점에서 과실이 있다고 보고, 김 씨 과실을 10%로, 보험사의 책임을 90%라고 봤습니다.
2심 법원은 김 씨에게 10%의 과실도 없다며 원고 전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교통사고와 장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고, 장해에 기왕증(과거 질병) 또한 없다고 보는 게 상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 머리에 외상을 입거나 의식을 잃었던 것은 아니지만, 머리가 흔들리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고 직후부터 두통과 구역(구토), 오심(울렁거림) 등을 지속적으로 호소했고, 3차례 뇌확산텐서 영상에서 동일하게 뇌신경로 손상인 외상성 축색손상 소견 판정을 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대법원도 소송 4년여 만에 지난달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었다"며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보험업계의 보상 관행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금융감독원 역시 보험금 분쟁 조정의 기준이 되는 금융감독판례에 이번 판결을 반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6년이란 긴 싸움 끝에 보상을 받게 된 김 씨. 마지막으로 보험사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김 씨 남편
보험사도 무조건 발뺌을 하기 전에는 상대방 가족의 입장도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소비자이면서 피해자이잖아요. 저희에 대해서 입장을 생각해서 너무 일방적이지 않게. 사실 저희는 힘이 없어요. 안 준다고 부지급 하면서 어떻게 대항을 못 해요. 법적으로 이렇게 끌어버리면 촌에서 살면서 5년 소송을 간다고 하는 건(너무 힘들죠).
이번 판결의 결정적 근거가 된 건 바로 장 교수의 진단이었는데요. 장 교수는 여러 차례 이 진단을 근거로 보험사와의 소송에 자문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진단 때문에 장 교수는 보험사로부터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늘 밤 9시 뉴스와 내일 기사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김민철 기자 (mc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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